반응형 전체 글18 기계를 입은 건축물: 하이테크 양식의 진화 뼈대와 내장을 드러내다, 건축의 파격적 선언 수천 년의 건축 역사에서 구조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뼈대나 내부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배관들은 철저히 감춰져야 할 대상이었다. 건물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들이지만, 시각적으로는 투박하고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화려한 대리석이나 벽돌 마감재 뒤에 조용히 은폐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젊고 반항적인 건축가들은 이러한 건축의 오랜 금기를 단숨에 깨부수었다. 우주선, 항공기, 거대한 정유 공장의 기계 설비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현대 산업 사회의 눈부신 기술력을 건축의 전면에 당당히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하이테크 건축(High-Tech Architecture)'의 탄생이다. 이들은 숨겨져 있던 건물의 내장(.. 2026. 10. 23. 렘 콜하스의 파격: 블랙 콘크리트와 공간 형태보다 프로그램을 우선시한 아방가르드현대 건축계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사상가를 꼽으라면 단연 네덜란드 출신의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거론된다. 앞서 다룬 런던의 급진적인 건축 학교 'AA스쿨' 출신인 그는, 건물의 외관이나 미학적인 '형태(Form)'에 집착하던 전통 건축의 문법을 가차 없이 해체했다. 콜하스에게 건축이란 겉보기에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위와 기능, 즉 '프로그램(Program)'을 어떻게 조직하고 뒤섞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는 저서 '정신착란의 뉴욕(Delirious New York)'을 통해 밀집된 현대 도시의 혼돈과 거대함(Bigness)을 긍정하고, 서로 전혀 다른 기능들이 한 건물 안에서 충돌하며 빚어내는.. 2026. 10. 23. 건축의 한계를 깨는 실험실: AA스쿨 제도권 교육에 반기를 든 독립 학교 영국 런던 중심부 베드퍼드 스퀘어(Bedford Square)에 자리한 '에이에이 스쿨(AA School, 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은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가장 열망하는 꿈의 무대다.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리처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 등 현대 건축을 이끄는 거장들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 여느 명문 대학의 건축학과와 달리 정규 종합대학에 속하지 않은 독립된 건축 전문 학교인 이곳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서양 건축의 아방가르드(전위적 예술)를 이끄는 거대한 실험실 역할을 해왔다.1847년, 두 명의 젊은 건축가 지망생이었던 로버트 커(Robert Kerr)와 찰스 그레이(Charles Grey)는 .. 2026. 10. 22. 자본주의의 신전: 상업 건축의 진화 거리의 혁명, 파사주의 탄생산업혁명 이전의 상업 공간은 비좁은 골목길과 천막을 친 야외 시장이 전부였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장을 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도시는 질척거리는 진흙과 마차로 인한 오물로 가득했다. 그러나 19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파사주(Passage)'라는 혁명적인 상업 공간이 등장하며 도시의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파사주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 위를 철골과 유리 지붕으로 덮은 최초의 실내 아케이드였다. 마차의 위협과 오물을 피해, 사람들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 아래로 화려한 쇼윈도와 카페가 늘어선 파사주는 당대 파리지앵들에게 환상적인 산책로였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 2026. 10. 22. 장 누벨의 철: 부식 스테인리스 스틸 건축의 금기, 녹과 부식을 끌어안다현대 건축에서 철은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재료지만, 수분과 산소에 노출되어 붉게 녹이 스는 현상은 건축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졌다. 녹은 곧 재료의 산화와 구조적 붕괴를 의미했기 때문에, 인류는 철표면에 페인트를 칠하거나 아연을 도금하며 부식을 막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여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일부 혁신적인 건축가들은 이 '녹'을 건물의 외장재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변색되는 철의 산화 과정을 일종의 자연스러운 장식이자 시간의 기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널리 알려진 내후성 강판(Cor-Ten Steel)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파격적인 물성의 역설을 보여.. 2026. 10. 21. 벽돌로 쌓아 올린 기하학과 빛: 마리오 보타 스위스 티치노 지역주의 건축의 선구자 20세기 중반, 전 세계는 유리와 철골로 대변되는 차갑고 획일화된 국제주의(International Style) 건축 양식이 점령하고 있었다. 어디에 지어지든 똑같은 외관을 한 콘크리트와 유리의 상자들이 세계 주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점령해 나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건축적 세계화의 흐름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반기를 든 인물이 바로 스위스 출신의 거장 마리오 보타(Mario Botta)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스위스 남부 티치노(Ticino) 지방의 고유한 풍토와 역사, 그리고 전통적인 건축 방식에 깊이 뿌리를 둔 '지역주의(Regionalism)' 건축을 주창했다. 장소의 맥락(Context)을 철저히 무시하는 기계적인 건축을 거부하고, 건물이 들어설 대지의 지형.. 2026. 10. 21.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