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30 자연으로 스며드는 곡선: 세지마 가즈요 자신을 지워내고 자연을 품다 현대 건축의 흐름 속에서 대다수의 스타 건축가들은 건물의 형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애쓴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나 육중한 노출 콘크리트, 혹은 화려한 티타늄 곡선으로 도시의 풍경을 압도하는 랜드마크를 짓는 것이 이들의 일반적인 목표다. 그러나 이러한 기념비적이고 자기주장 강한 건축의 대척점에는, 건물의 존재감을 한없이 투명하게 지워버리고 주변 자연과 사람들의 움직임만을 오롯이 남기려 하는 고요한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와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가 결성한 건축가 그룹 '사나(SANAA)'가 그 주인공이다.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들은, 얇은 유리와 가느다란 .. 2026. 10. 29. 친환경 유토피아를 짓다: 비야케 잉겔스 실용적 유토피아주의의 탄생 현대 건축계는 오랫동안 두 가지의 극단적인 진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자본의 논리와 경제적 효율성만을 맹신하며 도시를 무미건조한 회색 콘크리트 상자로 채우는 지루하고 '실용적인' 건축가들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중력을 무시하고 기하학적인 도발을 일삼으며 현실에서는 도저히 지어질 수 없는 난해한 도면만을 그려내는 '전위적인(Avant-garde)' 건축가들이 존재했다. 이 팽팽한 이분법의 경계를 유쾌하게 무너뜨리며 21세기 건축계의 가장 뜨거운 록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다.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 사무소 'BIG(Bjarke Ingels Gr.. 2026. 10. 29. 빛과 침묵을 짓다: 루이스 칸의 건축 근대 건축의 한계를 넘어선 철학자 20세기 중반, 세계 건축계는 철골과 유리로 대변되는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확립한 근대 건축은 인간의 이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건물의 장식을 없애고 효율성과 투명성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방이 유리로 덮인 매끈한 상자형 빌딩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풍경을 복제해 냈고, 건축물이 지녀야 할 장소성과 인간 영혼을 울리는 깊이감은 점차 상실되어 갔다. 이처럼 근대 건축이 기계적인 차가움과 가벼움에 매몰되어 가던 시기, 고대 로마의 폐허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장엄한 무게감과 종교적인 숭고함을 현대 건축에 다시 불어넣은 구원자가 등장했다. 바.. 2026. 10. 28. 직선을 깬 곡선: 자하 하디드의 건축 직선과 직각의 독재를 향한 반항 수천 년의 건축 역사는 중력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무거운 돌과 철근콘크리트를 무너지지 않게 높이 쌓아 올리기 위해 인류는 X, Y, Z축으로 이루어진 데카르트의 직교 좌표계에 철저히 의존해 왔다. 수직의 기둥과 수평의 보, 그리고 90도로 꺾이는 직각의 모서리는 건축물이 지구상에 굳건히 서 있기 위한 가장 경제적이고 절대적인 물리적 법칙이었다. 그러나 이 견고한 직선의 독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인물이 등장했다.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이자,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다. 영국의 급진적인 건축 학교 AA스쿨(Architectural Association.. 2026. 10. 28. 상처와 기억을 기록하다: 추모의 건축 위령탑을 넘어선 건축적 공감 과거 인류가 비극적인 역사나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방식은 보통 거대한 위령탑이나 영웅적인 청동 동상을 세우는 것에 그쳤다. 이러한 전통적인 기념비(Monument)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묵념을 올리는 대상일 뿐, 관람객이 그 역사적 아픔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공감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건축가들은 슬픔과 기억을 다루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냈다. 바로 건축 공간 자체를 거대한 '감정의 증폭기'로 설계하는 '추모의 건축(Architecture of Memory)'이다. 이들은 건물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짓는다는 건축의 오랜 대원칙을 고의로 파괴했다. 바닥을 기울게 만들고, 창문을 없애며, 동선을 미궁처럼 비틀어 관람객이 공간 안에서 직접 신체적인 불편함.. 2026. 10. 27. 버려진 공간의 부활: 재생 건축 미학 부수고 새로 짓는 시대의 종말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경제 성장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낡고 쓸모없어진 건물을 가차 없이 허물고 그 자리에 번듯한 새 건물을 세우는 '스크랩 앤드 빌드(Scrap and Build)'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탈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도심 곳곳에는 수명을 다한 거대한 화력 발전소, 방직 공장, 곡물 창고 등 흉물스러운 산업 폐기물들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막대한 철거 비용과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에 직면한 현대 건축계는 이 거대한 흉물들을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건물의 뼈대와 시간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겨둔 채, 그 안에 현대적인 새로운 기능(프로그램)을 주입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이른바 '재생 건축(Adaptive Reuse)'이 탄생한 .. 2026. 10. 27.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