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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토피아를 짓다: 비야케 잉겔스

by 건축인문학 2026.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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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유토피아주의의 탄생

현대 건축계는 오랫동안 두 가지의 극단적인 진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자본의 논리와 경제적 효율성만을 맹신하며 도시를 무미건조한 회색 콘크리트 상자로 채우는 지루하고 '실용적인' 건축가들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중력을 무시하고 기하학적인 도발을 일삼으며 현실에서는 도저히 지어질 수 없는 난해한 도면만을 그려내는 '전위적인(Avant-garde)' 건축가들이 존재했다. 이 팽팽한 이분법의 경계를 유쾌하게 무너뜨리며 21세기 건축계의 가장 뜨거운 록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다.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 사무소 'BIG(Bjarke Ingels Group)'를 설립한 그는, 현실의 척박한 제약들을 기꺼이 수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파격적인 이상향을 구현해 내는 '실용적 유토피아주의(Pragmatic Utopianism)'를 건축계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희생이 아닌 즐거움, 쾌락적 지속가능성

비야케 잉겔스와 BIG의 건축 철학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쾌락적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이다. 20세기 후반 기후 위기가 도래한 이후, 환경 운동가들과 생태 건축가들이 대중에게 요구해 온 전통적인 지속가능성은 철저히 개신교적인 금욕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샤워 시간을 줄여라", "비행기 여행을 자제하라",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땀을 흘려라" 등, 친환경적인 삶이란 필연적으로 인간의 쾌락을 희생하고 물리적인 고통을 감내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속죄의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비야케 잉겔스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환경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는 친환경 건물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삶을 선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가능성은 고통스러운 희생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한 차원 더 유쾌하게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세련된 도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스키장이 된 발전소, 아마게르 바케

이러한 '쾌락적 지속가능성'의 철학이 가장 극적이고 노골적으로 구현된 걸작이 바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지어진 쓰레기 소각 발전소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 또는 코펜힐)'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열병합 발전소는, 악취와 매연을 뿜어내는 대표적인 혐오 시설로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BIG는 코펜하겐 도심 한복판에 지어질 이 거대한 발전소를 숨기는 대신,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내놓았다.

지붕을 스키장과 등산로로 탈바꿈시킨 쓰레기 발전소 '아마게르 바케'. 출처: Caroline Brundle Bugge / Getty Images

 

산이 없어 스키를 탈 수 없는 평평한 지형의 코펜하겐 시민들을 위해, BIG는 발전소의 거대한 경사진 지붕 전체를 400미터 길이의 사계절 인공 스키 슬로프로 덮어버렸다. 건물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85미터짜리 인공 암벽 등반장을 설치했고, 옥상에는 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했다. 최첨단 필터링 기술을 도입해 유해 물질이 완벽하게 제거된 깨끗한 수증기만을 굴뚝으로 배출하며, 애초 굴뚝에서 1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때마다 거대한 도넛 모양의 연기 고리(Smoke Ring)를 뿜어내어 시민들에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시각적 유희로 전달하고자 했다(기술적 한계로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못했다). 아마게르 바케는 혐오 시설이 완벽한 친환경 기술을 입었을 때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테마파크로 변신할 수 있음을 증명한 현대 건축의 가장 위대한 코미디이자 혁명이다.

 

역발상으로 제약을 돌파하다, 밴쿠버 하우스

비야케 잉겔스의 '실용적 유토피아주의'는 거대한 인프라 시설뿐만 아니라 복잡한 도심 한복판의 상업 및 주거용 마천루에서도 맹렬한 힘을 발휘한다. 캐나다 밴쿠버에 지어진 '밴쿠버 하우스(Vancouver House)'는 건축가가 도시의 엄격한 규제와 최악의 대지 조건을 역이용하여 어떻게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창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교본이다. 이 건물이 들어설 부지는 거대한 고가도로와 램프(진입로) 사이에 낀 비좁고 삼각형 형태의 자투리땅이었다. 게다가 밴쿠버 시청은 고가도로에서 건물이 최소 3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이격 거리 제한과, 인근 공원에 건물 그림자가 드리워서는 안 된다는 일조권 규제까지 엄격하게 강제했다. 건물을 지을 수 있는 1층의 바닥 면적은 절망적일 정도로 좁았다.

하층부는 비우고 상층부로 팽창하는 역설적 구조의 밴쿠버 하우스. 출처: hapabapa / Getty Images

보통의 건축가라면 사업성을 포기했겠지만, BIG는 건물의 하층부를 깎아내고 윗부분을 팽창시키는 기형적인 '가분수' 형태의 매스(Mass)를 고안해 냈다. 1층 기단부는 고가도로와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좁은 삼각형 형태로 시작하지만, 공원의 그림자 규제를 벗어나는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서서히 공간이 바깥으로 팽창하여 최상층에서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평면을 완성한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고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자라나는 듯한 이 기하학적인 형태는,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한 과시가 아니라 도시가 요구하는 척박한 규제들을 수학적으로 회피하며 용적률을 극대화한 가장 합리적이고 치열한 공학적 결과물이다.

 

수직적인 공동체를 엮다, 8 하우스

주거 건축에 있어서도 BIG는 고정관념을 가차 없이 해체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 외레스타드 지역에 지어진 '8 하우스(8 House)'는 전통적인 아파트나 폐쇄적인 주상복합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혁신적인 공동 주택이다. 건물의 평면이 숫자 '8'의 형태를 띠고 있어 이름 붙여진 이 거대한 건축물은, 주거 공간과 사무실, 그리고 상점들이 하나의 건물 안에 유기적으로 혼합된 입체적인 마을이다.

입체적인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품은 코펜하겐의 8 하우스. 출처: olli0815 / Getty Images

가장 충격적인 건축적 장치는 건물의 1층 길거리에서부터 시작해 지상 10층의 꼭대기 펜트하우스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거대한 외부 경사로(Ramp)다. 코펜하겐 시민들의 필수품인 자전거를 탄 채로 자신이 살고 있는 10층 아파트 현관문 앞까지 페달을 밟아 곧장 올라갈 수 있다. 8 하우스의 이 긴 산책로는 이웃들이 엘리베이터라는 닫힌 공간에서 침묵하는 대신, 햇빛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입체적인 골목길 역할을 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통해 수직적인 도시를 꿈꿨다면, 비야케 잉겔스는 8 하우스를 통해 평면의 길고 정겨운 골목길을 3차원으로 구부려 하늘 위로 길게 엮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쾌함으로 세상을 짓는 긍정의 건축

우리는 흔히 훌륭한 건축이나 철학은 진지하고 무거워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비야케 잉겔스가 이끄는 BIG의 작업들은 건축이 반드시 심각한 얼굴을 할 필요가 없음을 증명한다. 기후 위기, 도심의 혼잡, 척박한 대지 등 인류가 직면한 무겁고 암울한 문제들 앞에서도 그는 결코 비관하지 않고 가장 긍정적이고 유쾌한 해답(Yes is More)을 내놓는다. 그에게 건축이란 단순히 비바람을 막는 껍데기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가장 즐겁고 재미있게 리모델링하는 거대한 '세계관의 창조'다. 쓰레기 소각장 지붕에서 스키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10층 골목길을 누비는 BIG의 실용적 유토피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낡고 지루한 도시 풍경을 유쾌하게 뒤바꾸고 있다.

 

※ 참고자료 출처:

  •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 공식 웹사이트 프로젝트 아카이브
  • 쾌락적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 개념 및 건축 사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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