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인공 건축재
자연 상태의 돌이나 나무를 제외하고, 인간이 스스로 가공하여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건축 재료는 단연코 벽돌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진흙을 빚어 햇볕에 말린 흙벽돌(Sun-dried brick)로 지구라트를 쌓아 올렸고, 로마 제국은 흙을 가마에서 구워낸 구운 벽돌(Baked brick)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거대한 수도교와 공공 목욕탕을 지었다. 벽돌은 작고 가벼워 사람의 손에 쥐기 편했고, 거푸집이나 대형 장비 없이도 인력만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기적의 모듈(Module)이었다. 수천 년 동안 벽돌은 건축물의 뼈대이자 피부로서 인류의 주거 문화를 지탱해 온 핵심적인 재료였다.
중력을 견디는 구조체, 조적조의 시대
벽돌을 켜켜이 쌓아 올려 벽을 만들고 하중을 견디게 하는 방식을 '조적조(Masonry)'라고 부른다. 조적조 방식은 위에서 누르는 압축력에는 강하지만 옆에서 미는 횡력이나 인장력에는 취약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다. 건물을 높게 지으려면 하단부의 벽을 비정상적으로 두껍게 만들어야 했고, 창문을 크게 내면 벽이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산업혁명 시기까지 벽돌은 가장 신뢰받는 구조재였다. 런던이나 뉴욕 등 근대 도시의 붉은 벽돌 공장과 다세대 주택들은 대량 생산된 규격화된 벽돌이 만들어낸 산업화의 상징적인 풍경이었다. 벽돌은 그 자체로 하중을 버티는 정직하고 묵직한 구조체로서 시대의 풍경을 지배했다.
철과 콘크리트의 등장, 벽돌의 위기
그러나 19세기 말 철골 구조와 20세기 초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하면서 벽돌은 구조재로서의 생명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얇은 철제 기둥과 콘크리트 슬래브가 건물의 하중을 모두 감당하게 되면서, 무겁고 시공 속도가 느린 벽돌로 건물의 뼈대를 세울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장식을 배제하고 유리와 콘크리트의 매끈한 질감을 선호했으며,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 올려야 하는 벽돌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비효율적인 재료로 치부되었다. 벽돌은 그렇게 현대 건축의 주류에서 밀려나 영영 사라지는 듯했다.
구조에서 피부로, 외장 치장재로의 화려한 부활
하지만 벽돌은 뼈대의 역할을 내려놓은 대신, 건물의 '피부'인 파사드(Facade, 입면)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현대 건축에서 벽돌은 더 이상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콘크리트 뼈대 겉면에 옷을 입히듯 얇게 쌓아 올리는 '치장 벽돌(Veneer Brick)'로 사용된다. 구조적 책임에서 해방된 벽돌은 건축가들에게 무한한 디자인의 자유를 선사했다. 벽돌 사이를 띄워 쌓아 빛과 바람을 통과시키는 '영롱쌓기', 벽돌을 엇갈리게 돌출시켜 표면에 3차원적인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패턴 조적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하학적이고 예술적인 입면 디자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에 맞춰진 따뜻한 물성과 단상
필자가 유리와 철골로 뒤덮인 차가운 현대 도시를 걷다가 잘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을 마주칠 때면, 설명하기 힘든 묘한 안도감과 따뜻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벽돌이라는 재료가 철저히 '인간의 신체(Human Scale)'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벽돌 한 장의 크기는 전 세계 어디서나 성인 남성의 한 손에 쏙 들어오도록 규격화되어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나 매끈한 커튼월에서는 기계의 차가움이 느껴지지만, 수만 장의 벽돌이 만들어내는 표면에는 흙을 구워낸 자연의 물성과 그것을 하나하나 얹어 낸 미장공의 땀방울이 서려 있다. 비록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재의 지위는 잃어버렸지만, 벽돌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 가장 따뜻하고 정교한 파사드로서 현대 건축에 결핍된 '인간적인 감촉'을 채워주고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흙과 불, 그리고 인간의 손이 빚어낸 이 작은 직육면체의 감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출처: 조적조 건축의 역사와 파사드 활용 (https://ko.wikipedia.org/wiki/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