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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로 쌓아 올린 기하학과 빛: 마리오 보타

by 건축인문학 202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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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Pino Musi - 자작,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9760933

스위스 티치노 지역주의 건축의 선구자

 

20세기 중반, 전 세계는 유리와 철골로 대변되는 차갑고 획일화된 국제주의(International Style) 건축 양식이 점령하고 있었다. 어디에 지어지든 똑같은 외관을 한 콘크리트와 유리의 상자들이 세계 주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점령해 나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건축적 세계화의 흐름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반기를 든 인물이 바로 스위스 출신의 거장 마리오 보타(Mario Botta)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스위스 남부 티치노(Ticino) 지방의 고유한 풍토와 역사, 그리고 전통적인 건축 방식에 깊이 뿌리를 둔 '지역주의(Regionalism)' 건축을 주창했다. 장소의 맥락(Context)을 철저히 무시하는 기계적인 건축을 거부하고, 건물이 들어설 대지의 지형, 기후, 그리고 주변 자연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최우선으로 삼은 것이다. 그의 건축은 언제나 땅의 지세를 거스르지 않으며, 마치 원래 그곳에 수백 년간 존재했던 자연의 일부처럼 단단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진작가: 피노 무시,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루이스 칸의 정신적 계승, 기하학과 빛의 탐구

마리오 보타의 건축 철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현대 건축의 위대한 시인 '루이스 칸(Louis Kahn)'이다. 보타는 젊은 시절 루이스 칸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그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루이스 칸이 추구했던 원, 정방형(정사각형), 삼각형 등 원초적인 기하학적 형태의 본질적인 힘, 그리고 두꺼운 벽을 통해 묵직한 볼륨감을 창조해 내는 공간의 원리는 보타의 건축에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하지만 보타는 스승의 그늘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루이스 칸의 육중한 기하학적 매스(덩어리)를 이어받으면서도, 닫힌 공간 속에 치밀하게 계산된 천창(Skylight)이나 기하학적인 틈새를 뚫어 극적인 빛을 끌어들이는 자신만의 공간 언어를 완성했다. 그에게 '빛'은 단순히 실내를 밝히는 수단이 아니라, 정지된 건축물에 시간의 흐름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 재료였다.

 

붉은 벽돌이 빚어내는 무한한 변주와 패턴

보타의 건축을 가장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시각적 상징은 단연 '벽돌'이다. 그는 유리와 철강이라는 현대적 신소재 대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재료인 붉은 벽돌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현대 건축에서 낡고 무거운 재료로 치부되던 벽돌은 보타의 손을 거치며 세련되고 현대적인 기하학적 패턴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벽돌을 단순히 일렬로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로와 세로의 방향을 엇갈리게 쌓거나, 색이 다른 벽돌을 띠 모양으로 교차 배열하여 건물 외벽에 강력한 흑백의 스트라이프 무늬를 만들어냈다. 이는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알프스 산맥 주변의 중세 로마네스크 성당들이 보여주는 줄무늬 패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다. 흙과 불로 구워낸 따뜻한 자연의 질감과 인간의 이성이 계산해 낸 차가운 기하학적 패턴이 완벽하게 결합한 파사드(입면)는 마리오 보타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시그니처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 architecture-history

강남 교보타워 붉은 벽돌의 위용과 랜드마크

한국 대중들에게 마리오 보타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단연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우뚝 솟은 '교보타워'다. 유리로 덮인 고층 커튼월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선 강남 한복판에서, 육중한 붉은 벽돌로 마감된 쌍둥이 타워의 위용은 그야말로 이질적이면서도 압도적이다. 흔히 고층 건물에는 무거운 벽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축적 통념을 깨고, 보타는 도시의 가벼운 풍경 속에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낸 듯한 묵직한 랜드마크를 세워 올렸다. 이 건물 역시 그가 사랑하는 벽돌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와, 원통과 직육면체가 결합한 기하학적 형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적 재료로 완성한 가장 현대적인 장소성

필자는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 앞에 설 때면, 마치 수 세기 전 중세 시대의 수도원이나 견고한 요새 앞에 선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의 건물들은 유행에 휩쓸려 지어지고 쉽게 허물어지는 현대 건축의 얄팍함을 매섭게 꾸짖는 듯하다. 보타는 언제나 "건축은 대지 위에 짓는 것이 아니라, 대지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장소성을 상실해 가는 차가운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가장 흙냄새 나는 전통적인 벽돌을 쥐고 자신의 뿌리가 닿아 있는 땅의 맥락을 끈질기게 탐구한 그의 태도는 깊은 울림을 준다. 루이스 칸으로부터 물려받은 빛과 기하학의 진리를 붉은 벽돌이라는 따뜻한 외투로 감싸 낸 마리오 보타의 건축은,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위대한 해답이다.

 

 

참고자료 출처: 마리오 보타 건축 철학과 대표작: https://ko.wikipedia.org/wiki/마리오_보타

                       교보타워 및 지역주의 건축 성향: 한국건축문화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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