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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목조 건축의 시대: 공학 목재의 진화

by 건축인문학 202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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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콘크리트에 밀려났던 나무의 한계


나무는 인류가 가장 먼저 손에 쥔 가장 오래된 건축 재료다. 그러나 나무는 수천 년 동안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혀왔다. 기둥이나 보로 쓰기 위해서는 자연 상태의 크고 곧은 원목을 그대로 베어내야 했기에, 숲의 규모와 나무의 수명이 곧 건축물의 크기를 제한했다. 또한 화재에 취약하고 벌레나 습기에 쉽게 부패하며, 뒤틀림과 갈라짐이라는 목재 특유의 변형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산업혁명 이후 튼튼하고 규격화된 철골과 철근콘크리트가 쏟아져 나오면서, 목재는 결국 주력 구조재의 지위를 내어주고 가구나 내장재, 혹은 소규모 주택을 짓는 데 만족해야 했다. 목구조로 마천루를 짓는다는 것은 공상 과학에 가까운 망상으로 여겨졌다.

 

한계를 돌파한 혁신, 구조용 면재 CLT의 등장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유럽에서 발명된 '교차집성재(CLT, Cross-Laminated Timber)'는 목재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꿨다. CLT는 나무판자를 나뭇결이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도록 겹겹이 쌓은 뒤, 강력한 접착제로 압착해 만든 거대한 첨단 공학 목재다. 결을 엇갈리게 붙이는 단순한 발상의 전환은 목재 고유의 뒤틀림과 수축, 팽창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강철이나 콘크리트 버금가는 엄청난 강도와 지지력을 획득한 것은 물론이고, 기둥이나 보 선(Line) 형태가 아닌 거대한 면(Plane) 단위로 생산이 가능해졌다. 콘크리트 슬래브처럼 두껍고 거대한 나무 벽과 바닥 판을 공장에서 찍어내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식 공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공학 목재의 등장으로 나무는 잃어버렸던 거대 건축 구조재의 지위를 단숨에 되찾았다.

 

불에 타지 않는 나무, 내화성과 내진성의 반전


고층 목조건축에 대해 일반 대중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우려는 단연 '화재'다. 그러나 두꺼운 공학 목재는 불에 닿으면 겉면만 까맣게 타들어 가는 '탄화층'을 형성한다. 숯처럼 변해버린 겉면이 단열재 역할을 하여 내부로 열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고, 덕분에 나무의 중심부와 건물의 뼈대는 붕괴되지 않고 오랫동안 하중을 버텨낸다. 뜨거운 열기에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철골 구조보다 화재 시 탈출 시간을 확보하는 데 오히려 유리하다. 게다가 나무는 철이나 콘크리트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받는 관성력이 작다. 가벼운 무게와 특유의 유연성 덕분에 지진의 충격을 흡수하고 견뎌내는 내진 성능 역시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탄소 저장고로서의 건축, 친환경 시대의 해답


목조건축이 21세기 건축의 최전선으로 부상한 가장 강력한 이유는 바로 환경 문제에 있다. 철근콘크리트를 생산하는 과정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나무는 자라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몸속에 저장한다. 목재를 베어내 건축물로 만들면, 그 건물은 수십 년간 거대한 '탄소 통조림'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지속 가능하게 관리되는 산림에서 나무를 베어 건물을 짓고, 그 자리에 다시 어린나무를 심어 탄소 흡수율을 높이는 선순환은 기후 위기 시대에 건축계가 내놓은 가장 적극적이고 훌륭한 해답이다. 노르웨이의 미요스타른(Mjøstårnet)이나 미국의 어센트(Ascent) 같은 18~25층 높이의 초고층 목조 빌딩들이 앞다투어 솟아오르는 배경에는 이러한 철학이 깔려 있다.

 

콘크리트 숲에 피어나는 따뜻한 물성과 단상


필자가 첨단 공학 목재로 지어진 대형 실내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감각은 강철과 유리 공간이 주는 세련됨과는 확연히 달랐다. 공간 전체를 감싸는 은은한 나무의 향기, 빛을 부드럽게 흡수하는 따뜻한 색감, 그리고 표면에 스며있는 옹이와 나뭇결은 철근콘크리트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거대하고 차가운 기계와 같던 현대의 건축이 첨단 기술을 통해 다시금 자연의 따뜻한 물성을 입고 인간의 감각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층 목조건축의 부활은 단순한 재료의 유행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단절되었던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축의 건강한 관계를 다시 회복해 나가는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다.

 

참고자료 출처: 교차집성재(CLT)와 현대 고층 목조건축 동향 (https://ko.wikipedia.org/wiki/집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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