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직 도시를 향한 인류의 오랜 욕망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신화에서 알 수 있듯,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건축물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 높이는 곧 권력이자 신성함의 상징이었고, 권력자들은 언제나 더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까지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건축의 높이는 철저히 중력과 재료의 한계에 묶여 있었다. 돌이나 벽돌로 건물을 높게 쌓으려면 밑동의 벽을 비정상적으로 두껍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891년 시카고에 지어진 16층짜리 모나드녹 빌딩(Monadnock Building)은 순수하게 벽돌만으로 하중을 버티게 설계되었는데, 이 때문에 1층의 벽 두께가 무려 1.8미터에 달했다. 이처럼 무거운 재료로는 더 이상 하늘을 향해 효율적으로 뻗어 올라갈 수 없었다.
시카고 대화재와 강철 프레임의 등장
수직을 향한 건축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871년에 발생한 끔찍한 비극, '시카고 대화재'였다. 목조 건물이 빼곡했던 시카고 도심은 이 화재로 이틀 만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젊고 야심 찬 건축가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불에 타지 않으면서도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재료와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해답이 바로 '강철(Steel)'이었다. 1885년 건축가 윌리엄 르 배런 제니(William Le Baron Jenney)가 설계한 '홈 인슈어런스 빌딩(Home Insurance Building)'은 세계 최초로 철골 프레임이 건물의 하중을 모두 지지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벽돌이 아닌 튼튼한 강철 뼈대가 건물을 떠받치면서, 외벽은 가벼워지고 창문은 넓어졌으며, 건물은 마침내 중력을 비웃듯 수직으로 치솟을 수 있는 구조적 해방을 맞이했다.
엘리베이터의 발명: 수직 이동의 혁명
강철 프레임이 마천루의 '뼈대'를 제공했다면, 마천루를 현실적인 생활 공간으로 만든 '핏줄'은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제아무리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있다 한들, 사람이 매일 수십 층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면 높은 층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이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엘리샤 오티스(Elisha Otis)다. 1853년 그는 밧줄이 끊어져도 추락하지 않는 안전 엘리베이터를 발명했고, 이 기술이 고층 건물에 도입되면서 높은 층의 가치는 완전히 뒤집혔다. 과거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대에는 하인들이 머물던 가장 불편한 꼭대기 층이, 이제는 도시의 파노라마를 독점하고 소음과 먼지로부터 벗어난 최고급 펜트하우스(Penthouse)로 신분 상승을 이룬 것이다. 강철과 엘리베이터의 결합은 도시의 부동산 지형과 자본의 흐름마저 완벽하게 재편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루이스 설리번의 철학
시카고를 중심으로 강철 마천루가 우후죽순 솟아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시카고파(Chicago School)'라 불리는 건축가 집단이 형성되었다. 이 중에서도 마천루의 미학적 기반을 다진 인물이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다. 과거의 유럽 건축가들은 고층 건물을 지을 때도 르네상스나 고딕 양식의 장식을 덧붙여 과거를 모방하려 했다. 그러나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모더니즘 건축의 위대한 선언을 남기며, 고층 건물은 그 수직적 상승감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철 뼈대가 만들어내는 직선적이고 실용적인 그리드(격자) 형태 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미학이 되어야 한다는 선구적인 통찰이었다.
뉴욕의 마천루 경쟁과 스카이라인의 탄생
시카고에서 싹을 틔운 마천루 기술은 20세기로 접어들며 뉴욕의 맨해튼에서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좁은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 속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와 자본을 수용하기 위해, 뉴욕의 건물들은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뻗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특히 1920~30년대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으로 대변되는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의 마천루 경쟁은, 자본주의의 번영과 미국의 국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거대한 쇼였다. 도시의 풍경은 수평선에서 수직선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뾰족하게 솟아오른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Skyline)'이라는 새로운 도시 미학이 탄생했다.
마천루가 바꾼 현대 도시의 풍경과 단상
필자가 처음 맨해튼의 마천루 숲이나 서울 여의도의 빌딩 계곡 사이를 걸었을 때, 하늘을 가리는 압도적인 강철과 콘크리트의 절벽 앞에서 묘한 경외감과 위압감을 동시에 느꼈다. 마천루는 단순한 사무 공간이나 주거지가 아니다. 그것은 제한된 땅 위에 무한한 공간을 창조해 내려는 자본주의의 기념비이자,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 공학의 승리를 보여주는 거대한 증거물이다. 돌을 깎아 신을 찬양했던 중세의 성당 자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강철을 이어 붙여 인간의 자본과 기술을 찬양하는 마천루가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 두바이나 상하이에서 벌어지는 초고층 빌딩 경쟁을 보고 있노라면, 바벨탑을 향한 인류의 오랜 욕망은 강철이라는 재료를 만나 비로소 가장 완벽한 물리적 형태를 찾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참고자료 출처: 마천루의 역사와 철골 구조의 발전 (https://ko.wikipedia.org/wiki/마천루)